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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43
‘마오의 중국’과 ‘스탈린의 소련’, 새로 공개된 비밀문서
김갑수 | 2018-01-11 13:20: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먼저 이름이란 무엇인가. 한국어 ‘이름’은 이르다(謂, 이를 위)의 명사형이 명사로 파생된 말이다. 이름은 한자로 명(名)이다. 명은 ‘저녁 석(夕)’과 ‘입 구(口)’ 자로 구성되어 있다. 밖에 나가 놀던 아이가 저녁이 되어 어스름해지면 누가 누구인지를 잘 식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럴 때 소리를 내어 부르는 식구가 이름이라는 것이다. 정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나는 읽는 책의 기준이 있다. 동양 책과 서양 책을 거의 반반으로 하는 것이다. 또한 서양 책은 미국과 유럽을 반반으로, 동양 책은 중국과 한국을 반반 정도로 선택한다. 우리 역사는 중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

우리 역사는 조선(단군, 기자, 위만)을 중심으로 하는 열국시대로 시작하여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의 4국시대를 거쳐, 가야가 빠진 3국시대에 이어 신라 ‧ 발해의 2국시대를 지나 고려에 이르러 1국시대를 맞이하여 조선까지 무려 1,000년 이상 1국시대를 누리다가 일제 침공으로 인해 남과 북으로 다시 분열되었다.

중국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우리 민족의 운명과 상당한 함수관계를 갖는 중국의 역사를 미시적으로까지는 알지 못해도 개괄적인 거시사 정도는 알 필요가 있다. 더구나 한자는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는 문자로서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를 주체 권력인 왕조의 이름을 통해 들여다보기로 한다.

중국의 역사는 길고 왕조 교체도 우리보다 잦았기 때문에 우리보다 많은 나라 이름이 있다. 이 중 대표적인 왕조를 꼽으면 19개가 나온다.

1. 하(夏, 기전 21~17세기)
2. 상(商, 기전 17~11세기)
3. 주(周, 기전 11세기~기전 256)
4. 진(秦, 기전 221~기전 207)
5. 한(韓, 기전 202~서기 220)
6. 위(魏, 220~266)
7. 촉(蜀, 221~263)
8. 오(吳, 229~280)
9. 진(晉, 265~420)
10. 수(隋, 581~618)
11. 당(唐, 618~907)
12. 요(遼, 907~1125)
(5대10국)
13. 송(宋, 960~1279)
14. 서하(西夏, 1038~1227)
15. 금(金, 1115~1234)
16. 원(元, 1271~1368)
17. 명(明, 1368~1644)
18. 청(淸, 1636~1912)
19. 중화민국(中華民國, 1912, 1949 ~ )

중국 대륙을 흐르는 대표적인 두 강은 황하(黃河)와 장강(長江)이다. 황하에서 하(河)의 발음은 흐린소리(탁음)로 나고 강(江)은 맑은소리(청음)로 난다. 그래서 누렇고 흐린 물이라서 황하, 길고 맑은 물이라서 장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자연의 이름이 이럴진대 하물며 왕조 이름이 예사로 지어졌을 리가 없다. 중국인 장일청(張一淸)이 지은 《12개 한자로 읽는 중국》(2016, 뿌리와 이파리)은 중국의 통일 왕조 이름 12개를 풀이하면서 중국 문화의 저변을 들여다보는 해박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원래 단어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함께 존재한다. 또한 대부분의 단어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중에서 시대적 역순으로 재구(再構, restructure)를 해서 그것이 논리적으로 이루어지면 정설로 삼을 뿐 대부분의 어원 풀이는 가설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의 어원 풀이도 아마 대부분이 가설일 터이다. 이 책은 한자 시대 이전 동물의 뼈에 새긴 갑골문으로부터 어원을 고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참고로 중국의 갑골문자는 금석학 전문가 왕의영(王懿榮)에 의해서 1899년에야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夏)’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땅에 모여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아직 국가 개념은 엷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도 중국의 사학자들은 중국 역사상 하나라가 최초로 왕위 세습제를 택했다고 주장한다. 하의 창업자는 역시 이설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치수사업으로 알려져 있는 우(禹)이다. 물론 하나라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있다.

중국의 성 단위 박물관들에 가 보면 하나같이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상주관’이다. 현대에 들어 중국은 하-상-주 세 나라를 정식으로 중국 역사에 넣는 공정을 해왔다. 이를 ‘하상주 단대공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단대(斷代)는 시대를 구분한다는 뜻이고 공정(工程)은 ‘연구 사업’, 영어로 해서 프로젝트의 뜻이다.

하가 쇠약해진 틈을 타서 제후 중 하나인 탕(湯)이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을 제압하고 중국 역사상 두 번째 왕조인 ‘상(商)’을 건국한다. 상은 시조인 설과 탕의 나라이다.(여기에서도 이름이 재미있다. 탕(湯) 자는 물길을 바꾼다는 뜻이다. 탕은 홍수 퇴치에 공을 세워 제후로 봉해진 부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것은 내 개인 추정) 하상주 단대공정 팀은 상의 건국 연도를 기원전 1556년으로 추정했다. 상(商) 자에는 제사와 전쟁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공자는 “문화의 융성함이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련다”라고 하며 주(周)나라에 대한 흠모지정을 피력했다. 주는 ‘예법이 두루 미치다’의 뜻이다. 주나라의 창업자는 기산의 고공단보이며 무왕에 이르러 상의 마지막 왕 주(紂)를 제압하여 새 왕조를 세웠다.

‘진(秦)’ 부족의 시조는 백익이며 진시황제에 이르러 6국을 제압하여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진의 초창기 원뜻은 ‘작물을 심기에 적합한 땅’이라고 한다. 진나라가 무너진 후 항우가 권력을 잡아 함께 봉기했던 장수들을 각지 제후로 봉했는데 유방에게는 한중지역을 주어 한왕(漢王)으로 봉했다. 한은 ‘은하수처럼 아름다운 한 줄기의 강물’이라는 뜻이다.

위, 촉, 오는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인물 조조, 유비, 손권의 나라이다. 《자치통감》에서는 조조의 위를 정통으로 기술했다. 훗날 사마염의 아들 사마소가 삼국을 퇴진시키면서 ‘진(晉)’을 세우고 칭제했다. 진은 병기와 관련되는 이름이기도 하고 ‘벼가 햇빛을 받아 무럭무럭 잘 자라는 모습’이라고 해독되기도 한다.

‘수(隋)’는 양견이 창업했는데 원래 아버지 양충이 수공(隨公)이었다. 이 수(隨) 자에 ‘따른다’는 뜻이 있어서 수(隋)로 바꾸었다고 한다. 수에는 여러 이설이 있지만 그 중 좋은 것을 취하면 ‘원만하고 부드럽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연이 수나라를 접수하고 세운 나라가 중국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문화 제국 ‘당(唐)’이다. 당에는 ‘넓고 크지만 겸허하다’는 뜻이 있다. ‘요(遼)’는 야율하보기가 처음 이름을 거란으로 정했다가 947년 오십대국을 종료시키면서 후진을 멸하고 요로 개명한 것이다. 요는 1125년 금(金)에 망한다.

송주(宋州)의 절도사였던 조광윤이 세운 ‘송(宋)’은 ‘정원에 나무를 심다’는 뜻으로 ‘정착’, ‘안거’의 의미로 풀이된다. 금이 요를 멸하고 송을 압박하자 송은 남쪽으로 밀려가 남송이 되었다.

‘원(元)’은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몽골을 원으로 개명한 것이다. 원은 주역에서 취한 말인데 ‘처음’, ‘으뜸’의 뜻이다. 원은 처음으로 북경을 수도로 삼았다. ‘명(明)’을 건국한 봉기 세력에는 백련교 조직원이 많았는데, 백련교의 원류는 광명교(光明敎). 즉 어둠을 이기는 빛의 종교였다. 창업자 주원장이 백련도 신도였다. 당연히 명(明)은 해(日) + 달(月), 즉 ‘밝음’의 뜻이다.

만주족은 본디 여진족의 일부였다. 이 여진족이 송나라 때 금을 세웠는데 거란족의 요나라에 밀렸다. 요(遼)는 철의 뜻인데 이 철보다 좋다는 뜻으로 거란은 금(金)이라고 칭한 것이다. 금은 몽골에 망하고(1234년) 몽골은 원이 되었다가 명에 망했다.(1368년)

명 말기에 다시 여진족이 부흥하여 누르하치가 대금을 건국했고 8남 황태극(홍타이지)이 대금을 ‘청(淸)’으로 개명했다. 청은 ‘동쪽에서 뜨는 해가 대지를 비춘다’는 뜻이다. 또한 중원에서 볼 때 만주는 동쪽에서 흥기한 나라이다. 청의 황제들은 창업자 홍타이지 이래 모두 유가사상과 중원문화에 익숙했다.

끝으로 중화민국(中華民國)은 중국 국민당의 손문이 1912년 청을 전복하고 세웠다. 이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모택동은 1949년 신중국 격인 중화민국을 건국했다. 중화에서 중은 중국의 첫 자, 화는 화하(華夏)의 첫 자인데 화하는 중국의 옛말이다. 민국은 ‘민주주의공화국’ 또는 ‘인민공화국’의 줄임말이다.


‘마오의 중국’과 ‘스탈린의 소련’, 새로 공개된 비밀문서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나서 최소 30년 이상 중국과 구소련의 기밀문서들은 차단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이전에 나온 저작들에는 일정한 한계와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의 기밀문서는 물론 구소련의 공문서에 대한 접근이 허용되면서 현대 중국 지도자들에 대한 보다 섬세하고 정확한 초상을 분명하게 기술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인 저널리스트 애드가 스노가 마오의 이야기를 처음 세상에 알린 시점인 1936년, 마오의 나이는 40대 중반이었다. 1년 후 애드가 스노는 마오와 인터뷰한 내용을 중심으로 한 마오의 이야기를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당연히 이 책은 당시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가장 영향력 있는 1차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 마오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의 수많은 언어로 기술되어 이제는 수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평전이 세상에 나와 있다.

1930년 대 애드가 스노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중국 공산주의 운동에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공개적으로 중국 공산당 지지를 표방하면서 글을 쓰던 좌익계 저널리스트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 있었다. 이것은 마오가 그를 불러들인 이유와도 관련될 터이다. 마오에게는 자기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훌륭한 나레이터, 즉 객관적인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서술자를 원했던 것이다.

《중국의 붉은 별》은 기대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혁명가로서의 마오에 대한 기술은 중국의 근엄하고 권위적인 경쟁자 장제스와 대조되었다. 이후 많은 전기 작가들이 애드가 스노보다 더욱 마오에 대해 우호적인 저작들을 만들어냈다.

마오에 대한 수많은 저작물은 대동소이했지만 크게 구별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마오와 마르크시즘의 관계로서 이것은 마오와 소련 코민테른의 관계로 좁혀질 수 있는 안건이었다. 애드가 스노는 마오를 소련 코민테른의 충실한 신봉자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후에 나온 책들 중에서 최소 반 이상의 것은 마오를 자치적이고 독립적인 공산당 지도자로 기술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이것은 작가들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오의 복심과 변신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1936년 당시만 해도 마오는 소련 코민테른의 지원이 절실한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마오가 자기 스스로 코민테른으로부터 자치적이고 독립적이라고 말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홍군 혁명과 신중국 창업이 성공한 후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고 더욱이 소련과 적대적 관계가 되었을 때는 크게 달라졌다. 마오는 당내 투쟁에서 자기가 제압한 중국의 교조적인 스탈린주의자들과 달리 근본적으로 모스크바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마오는 당당했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스탈린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주적인 중국의 혁명가로 거듭났다. 바로 이 점이 수많은 작가들의 마음을 사게 한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작가들은 스탈린이 마오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마오를 공산주의자라기보다 농민 민족주의자로 간주했다고 썼다. 또한 중국 농촌에서 중국 혁명이 고조된 것은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입장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사례로 간주했다.

이런 논지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1949년 말까지 마오는 단 한 번도 모스크바를 방문하지 않았으며 스탈린 역시 개인적으로 마오를 알지 못했다. 동시에 마오를 반 레닌주의자로 진단하거나 트로츠키주의자처럼 대죄를 지었다고 비난하는 보고서가 중국 공산당 내외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크렘린에 전해진 것도 사실이다.

스탈린이 마오를 ‘동굴 마르크스주의자’로 여겼다는 레온 트로츠키의 주장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1950년대 말 제 20차 소비에트 공산당 전국대표자 대회에서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마오는 스탈린이 자기를 불신했다는 사실을 몇 차례 발설했다.

그러나 최근에야 실제로 접하게 된 소련과 중국의 공문서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마오와 스탈린의 관계가 그렇게 무 자르듯이 단순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마오는 일정한 시점까지 고통을 감내하면서 스탈린의 충실한 복종자처럼 행세했다. 마오가 표면적으로 소련의 모델에서 벗어난 것은 스탈린이 사망하고 나서였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창당 이래 1950년 대 초반까지 모스크바의 재정적 지원에 의존했다.

1943년 코민테른이 해체되고 소장하고 있던 기록물은 이후 코민포름(1947 설립, 1956 해체된 국제공산당 정보국)의 기록물들과 함께 통폐합되어 보관되다가 1999년 이후에야 조금씩 해제가 풀리게 되었다.

이 기록물들은 매우 방대하면서도 정교하다. 여기에는 마오의 정치보고서, 사적인 서신, 마오와 스탈린, 스탈린과 저우언라이, 마오와 후르쇼프 회담의 속기록. 소련 의사가 작성한 마오의 진료기록, 마오와 부인들과 자녀들,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마오의 정적이 제기한 비판 내용 등 마오의 생애를 재평가하는 데 긴요한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다.

마오는 혁명가이자 독재자였다. 그는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성인군자도 악마도 아니고 진정으로 조국의 자주와 번영을 위해 국제적 명성을 얻고자 했던 ‘대단히 복잡한 인물’이었다. 그는 20세기 이상주의적인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레닌이나 스탈린과 달리 그는 정치 모험가였을 뿐 아니라 민족 혁명가였다.

마오는 반식민지 상태의 중국, 내전의 수렁에 빠진 중국 대륙을 통일시켰다. 그는 급진적인 경제적, 사회적 개혁을 추동했고 그의 국내 정책은 수천 만 중국인의 목숨을 희생시킨 비극을 낳기도 했다.

새로운 기록물에서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대목은 6.25 전쟁 당시 스탈린과 마오의 불편한 관계이다. 스탈린은 한반도를 통일시킬 생각이 없었으며 단지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미국이 조선(북)뿐 아니라 중국과 충돌하여 세력이 약화되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 다음에 스탈린은 동유럽권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인 혁명을 일으키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1960년대 중국과 소련은 심각한 긴장관계로 돌입했다. 새로운 소련 비밀 기록에는 소련 집권층 내부에서 중국에 대한 무력 개입까지 논의했으며 심지어 중국 공업지역에 대한 원폭 투하나 원자력 기지를 폭격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쯤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국의 수구세력은 미국을 과잉 신뢰한다. 그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진보주의자들 중에는 아직도 구소련을 과잉 신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둘 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소련은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지 초강대국의 탐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만년의 마오는 68세 때(1961년) 몽고메리 원수를 만났을 때, “마르크스를 보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72세 때인 1965년 애드가 스노와 다시 만나 죽음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이제 곧 상제(上帝)를 만나러 갈 것”이라고 했다. 또한 마오는 스탈린을 가리켜 “위선적인 서양 귀신”이라고 조롱했다. 왠지 묘한 느낌을 주는 흥미로운 일화들이 아닐 수 없다.

『마오쩌둥 평전』(2017.3 민음사)은 내가 읽은 마오와 중국 현대사에 관한 수십 권 책 중에서 가장 성실하게 쓰인, 가장 최신의, 그리고 가장 두꺼운(1042쪽) 책이다. 이 책은 방대한 양의 1, 2차 자료에다 참고문헌만 해도 300권이 넘게 제시된 대작이다.

1부 ‘학습자’ 편에서는 마오의 출생과 성장기(1893-1921), 2부 ‘혁명가’ 편(1922-1949)에서는 공산당 창당과 대장정과 옌안 시기, 3부 ‘독재자’ 편(1950-1976)에서는 신중국 통치와 죽음까지가 다루어진다.

이 책의 두 저자는 러시아 계 알렉산더 판초프와 스티븐 레빈인데 둘 다 미국의 현직 대학교수다. 따라서 사회주의자가 아닌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쓰인 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 책은 애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보다는 마오에게 덜 우호적이고, 해리슨 솔즈베리의 『새로운 황제들』보다는 더 우호적이다. 하지만 이 책의 최대 강점은 기존의 어떤 마오 평전보다 객관적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앞에 언급되었듯이 중국 공산당과 소련 지도부의 관계가 밀도 있게 증언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마오와 스탈린, 마오와 흐루쇼프의 밀착과 갈등과 대결의 미시사가 적나라하게 전개된다. 저자들은 이 책이 ‘러시아 문서 보관소에서 발굴된 기록으로 새롭게 쓴 평전’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는 마오가 왕밍, 보구, 장궈타오 등 좌경교조주의자들과 벌인 권력다툼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기도 한다. 이 책에는 마오는 “마르크스 - 레닌을 모른다”고 비난을 받았다는 언급이 10번도 더 나온다. 실제로 마오는 스탈린의 지시로 마오를 관찰하러 간 몰로토프에게 “나는 『자본론』을 읽지 않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507쪽)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마오가 마르크스- 레닌을 몰랐을 리는 없다. 다만 마오는 마르크스건 레닌이건 심지어 공자까지도 철저히 중국에 유리한 도구로 이용했을 뿐 거기에 함몰되지는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에게 실로 중차대한 교훈을 전달한다.

얼마 전 나는 페이스북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한 이병창 교수가, “마르크스를 모르면서 조선 역사를 공부하면 국수주의자가 된다”고 쓴 글을 읽었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강변이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조선 역사를 모르면서 마르크스를 공부하면 뭐가 될까?

이에 대한 답은 저 위에 있다. 자기 것을 알지 못한 채 마르크스를 중시하면 왕밍, 보구, 장궈타오 등의 후예가 될 따름이다. 놀랍게도 좌경교조주의자들은 형세가 불리해지면 곧잘 우경투항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마오는 젊어서 존경했던 공산당 지도자 천두슈(陳獨秀)가 갑자기 우경투항으로 변절한 데에 분노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6.25 전쟁’ 부분이다. 6.25 전쟁에서 스탈린이 김일성과 마오를 기만했다는 사실은 최근 들어 여러 기록들에서 확인된 바 있다. 위에 언급한 해리슨 솔즈베리의 『마지막 황제들』에서는, 스탈린이 마오를 견제하기 위해서 ‘3중의 속임수’를 썼다고 표현했다.

이 책에서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이 현존 기록을 근거로 제시된다. 스탈린은 유럽의 공산화를 위해 미국과 중국의 전쟁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소련이 왜 6.25 발발 직후 유엔 안보리에 불참하여 거부권 행사를 포기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린다. 이것은 평소 내가 추정, 주장해왔던 바와 일치하는 견해다.

스탈린에게 조선은 거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유럽을 단연 더 중시했다. 왜 그런 것일까? 사실 러시아는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언제나 유럽을 선망하는 태도를 보인 이상한 나라다.

이것은 제정 러시아 표트르 대제 이래 소련 지도자들이 공통으로 보여 온 현상이다. 내가 만들어 쓰는 말 중에 ‘모양주의(慕洋主義)’가 있다. 근거 없는 서구 동경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위선적인 서양 귀신’이라는 마오의 말보다는 한층 순화된 표현이다.

끝으로 이 책의 저자는 마오를 레닌이나 스탈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인물로 평가한다.

“레닌이나 스탈린과는 달리 마오쩌둥은 중국을 반식민지 상태에서 독립적이고 강력한 나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사회관계를 변혁시킨 혁명가일 뿐만 아니라 쑨중산(孫文)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중국인을 존중하게 만든 위대한 반제국주의 혁명을 실현시킨 민족 영웅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이 결코 ‘위대한 조타수’를 잊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8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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