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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33
조영래와 전태일과 권인숙
김갑수 | 2017-12-20 12:11:3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내가 어려서 이런 책들을 읽고 자랐더라면…

쉽고 아기자기한(?) 책들이다. 내가 어려서 이런 책들을 읽고 자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들이다.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와 《승정원일기》 그리고 《기록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듯이 규장각은 조선시대 학문연구기관이자 도서관 같은 곳이고 승정원은 오늘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 같은 곳이다. 이 두 곳은 ‘기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기관이다.

1776년 즉위한 정조는 창덕궁에서 가장 경관이 아름답고 한적한 곳에 규장각을 지었다.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건축된 이 2층 건물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도록 벽을 만들지 않았다. 본관 왼쪽의 건물은 서향각인데 종이책들을 간수하는 곳이었다. 건물 앞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 옆에는 정자가 있다.(사진, 김홍도가 그린 규장각)

규장각 1층에는 역대 왕들의 문장과 글씨를 전시 보관했고 2층에서는 학자들이 모여서 공부를 했다. 규장각 학자들의 출퇴근 시간은 하절기 6시 출근 - 12시 퇴근, 동절기 8시 출근 – 오후 2시 퇴근이었다.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마라. 일할 때는 공적인 일이 아니면 마루로 내려가지 마라. 규장각 학자 외에는 아무리 높은 관리도 규장각에 올라갈 수 없다. 일할 때는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하라.” (정조가 규장각에 내린 지침)

규장각에는 각종 서적과 글씨, 의궤와 그림, 지도와 지리지, 외국어 학습 교재 등이 보관되어 있다. 모두가 격조 높고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이다. 이 중 나를 사로잡은 것을 딱 하나만 들라고 하면 대원군이 주도하여 그린 조선 8도 각 고을 지도 459장이다. 나는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진 지도를 평생 본 적이 없다.

정조는 6년 후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더 지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조선을 기습 침공한 프랑스군은 도망치면서 이 외규장각의 문화재들을 약탈해 가서 지금도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프랑스는 또 선심 쓰듯이 영국에도 우리 문화재 몇 점을 주어서 오늘날 영국박물관에도 외규장각의 문화재가 있다고 한다. (이 두 박물관은 세계 최고의 ‘장물 박물관’들이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실의 일기인데 인조가 즉위한 1623년부터 1910년 망국까지 288년 동안을 기록하여 매달 1~2권의 책으로 묶어 발행한 것이다. 원래 조선 건국 초기부터 기록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정밀한 기록물로서 타자와의 비교 자체를 불허한다.

《승정원일기》는 총 2억 4250만 자, 3243책이다. 참고로 《조선왕조실록》 5,400만 자, 중국 역사서의 총아인 《25사》는 4,000만 자이다. 이 일기는 가장 정밀한 역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예컨대 조선시대에는 조정으로 상소가 많이 올라왔는데, 무려 1만 명이 연명하여 올린 상소도 있다. 이 경우에도 상소의 내용은 물론 상소인 1만 명의 이름을 모두 적어 놓았다 하니 그 기록의 상세함에서 세계 모든 역사서들을 압도한다.

이미 《조선왕조실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는 유네스코 심사원들은 조선왕조실록과 거의 비슷한 성격을 지니는 《승정원일기》를 처음에는 난감해했지만 막상 직접 들여다보고는 탄복한 나머지 즉각 지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288년 동안의 날씨와 강우량, 천문 현상 등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구의 장시간 기후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희귀한 자료가 된다.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에 일본인들도 거의 손을 대지 못한 승정원일기는 지금 한국고전번역원을 중심으로 한창 번역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번역 공정이 아직 20%밖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향후 35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2017년부터 인공지능을 투입하여 27년을 앞당겨 2035년 완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선시대 승정원에서는 일기를 기록하는 일 외에 매일 <조보>를 만들어 전국에 보내는 일도 어김없이 해야 했다. 마치 오늘의 아침신문처럼 조정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중요한 것을 추려 전국에 말을 달리게 하여 가까운 곳은 당일에, 아무리 먼 오지일지라도 열흘에서 보름을 넘기지 않고 중앙정부의 소식을 지방에 전달해 주었으니 놀랍지 않은가?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사를 만드는 과업이다. 인류는 신화를 버리고 역사를 선택함으로써 바야흐로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접어들었다. 기록이란 강자 대 약자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즉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기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록이란 과거인과 현재인과 미래인을 연결시키면서, 이 3자의 평등을 도모할 수 있도록 만든다. 기록은 책의 형태로 집대성된다. 그러므로 독서란 다름 아니라 기록을 읽는 것이다.


조영래와 전태일과 권인숙

“권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인사, 얼굴 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무엇을 하였는가. 그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하였으며 지금까지 당하고 있는가?.... 국가가, 사회가, 우리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1986년, 기억만으로도 살 떨리는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피해자 권인숙에 대한 변론의 서두이다. 이 변론문은 개인적 고난을 일약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폭발성 논리와 인간 근저의 감성에 호소하는 비장한 문체를 겸비하고 있다. 이 명문장을 작성한 이는 조영래 변호사였다.

매년 12월 12일이 되면 사람들은 1980년 전두환 일당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을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 군사반란이 있은 후 10년이 지나 우리가 기억해 봄직한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는 점은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은 조영래의 요사(夭死)였다. 불현듯 폐암선고를 받은 그는 1990년 12월 12일 43세의 일기로 우리 곁을 영영 떠난 것이다.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부재하는 오늘, 통합적인 안목을 갖춘 데다 약자에 대한 애정이 남달리 뜨거웠던 조영래의 단명(短命)이 유달리 안타깝다.

1986년 당시 부천경찰서 조사계 경장 문귀동은 위장취업으로 체포된 22세 여대생(서울대 의류학과 4년) 권인숙의 온몸을 주무른 후 옷을 벗겼다. 그리고 자기도 옷을 벗고는 자신의 성기를 권양의 입에 갖다 댔다. 그는 뒷수갑이 채워진 권양의 등 뒤로 가서 자신의 성기를 권양의 하반신에 비비는 따위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악마의 소행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 《우리들의 딸 권양》이다.

그때는 물론 지금도 있는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도착되는 현상이다. 당시 권인숙은 문귀동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혁명을 위해 성을 무기화한다”고 규정하며 기각해 버렸다.

조영래는 3년여 동안 독재권력에 의해 석화된 검찰과 법원 그리고 왜곡 언론 등과 맞서 싸웠다. 그는 비범한 담력과 끈기와 지혜를 모아 결국 문귀동의 5년 징역형을 이끌어냄으로써 공권력의 횡포와 인권 유린 실태를 세상에 알렸다. 이 부천서 성고문사건은 이듬해 발생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함께 부도덕한 5공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에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한 청년이 스스로 몸에 석유를 뿌리고 성냥불을 댕긴다. 전태일, 그 역시 1986년의 권인숙처럼 22세의 청년이었다. 화염 속에서 비틀리는 그의 손에는 근로기준법 책자가 쥐어져 있었다.

동료들이 전태일의 몸에 붙은 불을 껐을 때 이미 그는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전태일은 동료들에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호소하고는 마지막까지 쥐고 있었던 의식의 가닥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분신 이후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조영래는 그 중 대표적 인물이었다. 장기표에게 연락을 받은 조영래가 잠시 사법시험 공부를 제쳐두고 나타났고 이어서 대학원생 최종고가 합류한다. 영락교회 청년회장으로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였던 최종고는 교회가 전태일의 시신을 거두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러 교회의 문을 두드렸으나 갖가지 이유로 거절당하고 만다.(《조영래평전》)

일주일 후인 11월 20일 서울대 법대에서 전태일 추도식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는 "전태일을 죽인 박정희 정권·기업주·어용노총·지식인·모든 사회인 등 5대 살인자"를 고발하는 시국선언문이 발표되었다. 전태일의 죽음이 결코 한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이를 계기로 독재에 대한 저항과 민권 수호를 위한 범국민적 운동을 제안한 이 선언문의 초안자는 바로 조영래였다.

이듬해 조영래는 사법시험 합격생으로서 법률가로서의 삶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4월 어느 날 그는 동아일보에 실린 작은 글 하나에 눈길이 쏠렸다. 그 글은 전태일의 죽음에 냉담한 한국 사회를 질책하고 있었는데 기고자는 뜻밖에도 이화여대 학생이었다. 부끄러움을 느낀 조영래는 이 '기특한 여학생'을 수소문하여 찾아 만난다. 여학생의 이름은 이옥경, 이후 부부가 된 두 사람의 중매인은 결국 전태일이었던 셈이다.

전태일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조영래의 노력은 《전태일평전》 집필로 구체화된다. 그는 장기표를 통해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씨가 준 전태일의 수기를 입수한다. 그는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수배 중에도 청계천 노동자들과 교분을 쌓으면서 평전 집필을 계속해 나갔다. 시간이 흘러도 조금도 변치 않고 진지하며 겸손한 조영래에게 청계천의 어린 노동자들은 하나 같이 우정을 느꼈다.

1978년 ‘불이여 나를 감싸 안아라’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초간된 《전태일평전》은 이후 1983년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라는 엮은이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출판된다. 이 책은 당국에 의해 출판과 판매가 금지된 채로 지하 루트를 통해 전국으로 보급되었다. 1987년 6·10 항쟁 이후 《전태일평전》은 명저로 부각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집필자가 조영래인 것은 알지 못했다.

이후 《전태일평전》은 저자 이름 조영래를 밝히면서 출간되어 '시대의 무거운 문서'로서 오늘날 새로운 고전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집필자인 조영래는 자기 이름이 박힌 책을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이것 역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전태일(全泰壹)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재단사라는 이름의 청년노동자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 둘의 젊음으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인간선언’이라고 부른다.(조영래 저 《전태일평전》 글머리)

2000년 전태일 분신 30주기를 맞아 청계천에 역사의 현장을 알리는 동판이 좌정되었고 이것은 청계천 복원 이후에도 자리를 옮겨 안치되었다. 청계 6가 버들다리에는 전태일의 동상이 있다. 전태일문학상도 제정되었고 전태일기념사업회의 활동도 활발하다. 이처럼 전태일의 죽음은 그의 유언대로 헛되지 않게 된 것만은 틀림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조영래가 집필한 《전태일평전》의 기여가 단연 컸다.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한 조영래의 업적은 탁월하다. 그는 유신독재와 5공정권에 대항하여 목숨 걸고 싸웠으며 약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라면 혼신을 다 바쳐 임했다. 그는 대한변협의 인권보고서 발간에 산파역을 했으며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설에도 참여했다.

조영래는 1984년 10월 망원동수재사건을 맡아 우리나라 사법사상 초유의 대규모 집단소송을 5년 10개월에 걸친 법적 공방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여성조기정년제사건, 보도지침사건, 상봉동진폐증환자사건, 《자본론》 출판사건, 한겨레신문 압수수색 취소청구사건 등 모두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소송의 변호를 맡았다.

하지만 조영래에게는 이런 현실적인 업적을 능가하는 조영래 특유의 미덕이 있다. 그것은 그지없이 따뜻한 인간미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인간미를 그리워하고 있다. 청년 조영래가 검사로서 자신이 처음으로 구속·기소한 사건에 대해 남긴 소감을 읽어 보면 세상 어디에 이토록 따뜻한 검사가 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5톤 기아마스타 트럭에 소금을 싣고 소금장사 하러 장위동에 갔다가 후진사고로 세 살짜리 어린아이를 치어 숨지게 했다. 업과상 전과도 있고 폭력전과까지 있는 데는 다소 놀랐다. 집유 기간 중 첫 번째 구류심문에서 떨고 있었다. 경찰에서 뺑소니라고 모는 것이 억울하다고 하는데 울먹거리며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과실이 있어서 잡혀왔다고 생각하느냐 재수 없어서 잡혀왔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양쪽 다라고 대답. 아이가 차바퀴 뒤에서 놀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석방할 가능성이 있나 기준을 알아보았더니 도저히 불가. 하여간 공소장을 썼다. 이 최초의 사건에서 우선 이 사람에게 미안한 것 두 가지가 남았다. 하나는 구형을 담당검사의 의견을 들어 그의 의견대로 덜컥 1년 6월로 해버린 것. 또 하나는 수갑을 풀어주고 담배를 권하지 못한 것. 물론 보다 근본적인 회한은 이런 사소한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조영래 평전》중에서)

조영래가 세상을 뜨고 나서 한국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조영래가 실천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인간애의 가치는 오래도록 불변할 것이다. 조영래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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