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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들으시오!
의리와 은혜를 저버려서는 안 되는 일
김갑수 | 2017-09-06 12:20: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들으시오!
- 의리와 은혜를 저버려서는 안 되는 일


시진핑 주석! 당신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소이다. 당신이 또 다시 조선의 핵실험을 규탄하고 유엔의 대북제재에 가담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물론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번에 보인 반응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제는 달리 생각해 볼 때가 되었어요. 일단 조선의 핵 보유는 개발 단계를 지나 기정사실화됐어요. 다시 말해 당신의 대 조선 정책은 실사구시 면에서도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단 말이오.

특히 당신이 존경하는 국가 창업자 마오쩌둥과 탁월한 혁명가였던 당신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을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래요. 당신은 1953년 6월 생, 당신이 세상에 나오고 한 달 만에 우리는 겨우 전쟁을 끝내고 7.27 휴전으로 인해 분단이 고착되었소. 아마 ‘분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보다 잘 알아야 하는 지도자는 없을 것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조선반도의 현행 분단 체제에 동의하고 있는 게 의문이오.

당신네 나라 중국도 아직 완전한 통일국가는 아니지 않소? 대만이 있어요. 게다가 당신네 나라도 질곡의 현대사에서 전면 분단의 위기에 봉착했던 적이 여러 번이오. 국공내전 때 미국은 양쯔강을 경계로 대륙을 분단시키려 했고 여기에는 가증스럽게 사회주의 국가 소련마저 가세했소. 그리하여 스탈린이 양쯔강 도강에 반대하자 마오는, “스탈린 (자라 좆만 한 쉑히가) 양쯔강을 조선의 38선인 줄 아는구나”라고 분노했더랬잖소.

국공내전 초기 당신네 공산군은 국부군에 비해 현저히 약세였소. 6만에 달하는 조선인은 동북민주연군이라는 이름으로 당신들을 희생적으로 도왔소. 동북전투에서 당신네는 국부군에게 밀려 진영이 양단되어 누란의 위기에 봉착했소. 그때 조선은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을 활짝 열고 당신들을 맞이해 동서로 연결시켰고 무려 5차례에 걸친 당신들의 원조 요구를 하나도 마다하지 않고 다 들어 줬어요.

그 전에 항일전쟁도 마찬가지요. 조선인은 동북항일연군의 최정예 부대였어요. 이홍광 이동광 허형식 최용건 김일성 김책 최현 등의 동북군 지도자뿐 아니라 관내 홍군에서도 양림 무정 진광화 윤세주 등의 혁혁한 이름들을 알고 있을 것이오. 심지어 조선인은 국공내전 마지막 단계 전투였던 하이난 전투에서도 무공을 세웠소. 당신네 인민혁명군가를 작곡한 이도 조선인 정율성이오. 말해 보시오. 만약 조선인이 없었더라면 당신네 혁명과 독립과 통일이 가능했다고 장담할 수 있겠소?

시진핑 주석! 당신네 중국도 원자탄이 없어서 공포에 떨면서 유엔에도 못 들어가고 미국, 소련으로부터 심한 굴욕을 당했지 않소? 그리하여 1964년 중국이 첫 핵실험에 성공했을 때 조선에서는 사심 없이 축하해 주지 않았던가요? 하나 더 덧붙여 사드 문제에도 당신네는 옹졸한 태도를 보이고 있소. 사드의 주범은 미국이오. 그런데 왜 미국에는 말하지 않고 약소한 한국에만 분풀이를 한다는 말이오?

끝으로 당신네 중국에서 성자 정치인이라고 칭송 받는 저우언라이가 “중국 오성홍기의 별들에는 조선인의 피가 배어 있다”고 한 말을 생각해 보시오. 또한 1958년 북의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당신네 <인민일보>는 쓰기를,
“중국 인민은 북벌의 전화(戰火) 속에서, 장정(長征)의 길에서, 항일의 간고한 세월 속에서, 장개석의 통치를 뒤엎는 승리의 진군에서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이 중국인민과 공동투쟁을 했으며, 자기 생명의 희생을 무릅쓰고 중국혁명과 중국인민의 해방사업을 원조한 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을 생각하시오.

자고로 의리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전혀 사회주의답지도 않을뿐더러 아시아의 전통적인 정의도 아니지 않소? 시진핑 주석! 당신은 지금 마오가 경멸해마지 않았던 기회주의자 스탈린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소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c_booking&uid=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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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허허  2017년9월6일 17시47분    
이사람이 왜 여기 있으며 이런글이 무슨 연유로 대문에 올라 가는가 ?
북한 위원장의 무슨 대변인 같은... 아직도 마르크스 운운 하는자..
꺼져라
(40) (-29)
 [2/6]   민폐  2017년9월6일 18시42분    
갑수님 정신줄 놓지 마소서

중국편들어 대만복속 통일운운 까지는 허풍이라 치부하겟지만
이제 하다하다 북핵 옹호 까지 하는것을보니
나가도 넘 나가 정신줄까지 놓아서야

글구 말이외다
꿈속에서 헤메이지 말고
우리네 역사에서
객관적 팩트로 중국 편들어 재미본 역사 존재햇는지
우째든
지난 60여년간 미국 편들어 세끼밥은 물론 10위무역국 15위국력

갑수님은 그덕에 중국여행 잘하고있잟소

반해 중국 주변국 봐
인도,베트남, 태국,필리핀 이도네사아 등등 중국 재미본 나라 있는지를
티벳문제는 어떻구

더이상 말해 무엇 하겟소
(30) (-37)
 [3/6]   사드가고평화오라  2017년9월10일 01시34분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중국을
잘 꼬집었네요...
남다르고 예리한 시각에 박수를 보냅니다~!!!
(34) (-19)
 [4/6]   최인호  2017년9월10일 21시58분    
http://namoon.tistory.com/961
기획]한국사회 극우화 어떻게 볼 것인가② 왜 그들은 극우화로 치닫는가
불철주야 2014.07.02 14:00 Posted by 동북아의 붉은_달

한국 극우보수세력은 극우화를 통해 국민들의 반일행동을 억제하고 북한 붕괴를 목표로 한 대북총력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한국 사회 극우화와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결합하면, 그 결과물인 한미일 3각군사동맹은 동북아에 신냉전을 불러오고 나아가 한반도에 심각한 전쟁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기획]한국사회 극우화 어떻게 볼 것인가

② 왜 그들은 극우화로 치닫는가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극우보수세력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특히 지방선거 이후 보여주는 몰상식하고 역사 퇴행적인 모습은 한 마디로 극우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식 극우화


극우화란 권위주의, 전체주의, 인종주의 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움직임으로 흔히 대표적인 극우화 사상으로 나치즘, 파시즘을 꼽는다. 극우세력들은 권력을 독점하고 자유를 억압하며 인명을 경시하고 군국주의의 길을 걷는다.


한국에서 극우화는 서구 사회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사대주의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원래 극우는 민족배타주의를 기본 사상으로 하기에 사대주의를 배척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극우세력은 일본, 미국과 결탁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친미·친일 사대주의 성향을 갖는다. 그 연장선에서 한 민족인 북한을 적으로 돌리면서 민족허무주의를 유포하는 기형적인 극우세력이 바로 한국의 극우세력이다.


최근 극우보수세력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인명 경시 ▲정부 비판 세력 탄압 ▲권력 사유화 ▲법치주의 붕괴 ▲노골적인 친일과 역사왜곡 등으로 전형적인 극우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극우화가 나타나는 것은 전 세계적인 극우화 움직임과 관련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이번 유럽연합 의회 선거에서 확연히 드러났듯이 유럽도 극우정당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이 대두된 유럽과 일본이 다시 극우화 열풍에 휩싸일 상황인 것이다. 이런 극우화 움직임은 심각한 경제위기가 배경이다.



▲집단적 자위권을 합법화한 아베 총리


물론 한국 경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한국 사회 극우화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경제위기가 모두 극우화로 연결된다면 한국 사회는 IMF 사태 직후인 1990년대 말에 가장 극우화 경향이 심각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 사회 극우화는 국제 사회의 극우화 경향, 특히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미국의 패권 약화가 있다. 미국의 추락은 군사·외교 영역과 경제 영역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에 파급효과가 더욱 크다.


러시아에게 뒤통수를 맞은 미국


올 들어 미국의 군사·외교적 추락과 관련한 대표적 사례로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라크 내전을 꼽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했는데 동부를 중심으로 한 친러시아 세력과 서부를 중심으로 한 친서방 세력이 계속해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친러시아파 대통령이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 체결 잠정 중단과 러시아 주도의 경제블록 참여를 선언하면서 심각한 충돌 양상으로 확대됐다. 결국 대통령이 러시아로 쫓겨나고 친서방파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그런데 원래 러시아 영토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가 러시아 편입을 결정하고 러시아가 이를 수용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해군이 지중해를 거쳐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다. 러시아가 속전속결로 크림반도를 차지하자 미국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과정에서 특이한 사건이 발생했다.


4월 10일 미국 구축함 <도널드 쿡>이 몽트뢰 협약을 깨고 흑해에 진입했다. 훈련이 명분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게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러시아는 즉시 수호이(Su-24) 전투기를 출격했다. 처음에 미국 구축함의 이지스 시스템은 수호이를 포착했다. 그런데 수호이가 구축함에 근접하자 갑자기 이지스 시스템이 꺼져버리고 말았다. 수호이가 이지스 레이더를 교란한 것이다. 수호이는 상공 150m로 초저공비행을 하며 구축함 위를 12번이나 왕복했다. <도널드 쿡>은 급히 루마니아 항구로 대피했으며 심리치료를 받던 승무원 27명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투기 한 대가 구축함의 이지스 시스템을 압도한 이 사건은 미국 국방부에 충격을 주었다.



▲도널드 쿡 구축함


2014년은 미국이 러시아에게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완패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최근 발발한 이라크 내전 역시 미국의 영향력이 중동에서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은 이라크에 장장 10년 동안 군대를 주둔시키고 친미 정부 구성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 2011년 철군하고 3년 만에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라는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에게 정부가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미국은 이라크 철군에 대한 정당성을 잃을 수 없어 이라크에 파병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라크의 친미 정부를 포기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입장이 되어 버렸다. 수니파 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미국에게 등을 돌리고 반군을 지원할 수도 없고, 시아파인 친미 이라크 정부를 지원할 수도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 이라크 정부와 같은 시아파인 이란 정부가 이라크 정부를 도와 군대를 파견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군과 3년 넘게 내전을 치르고 있는 시리아 정부 역시 이라크 정부를 지지한다.


결국 이라크 내전이 어떻게 끝나든 미국 입장에서는 중동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라크 정부가 수성에 성공하면 정부를 적극 지원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며, 반군이 승리하면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만약 이라크가 2~3개로 분리되는 상황이 발생해도 최소한 1개는 이란의 영향 아래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미국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애당초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장악력이 줄어든 게 이번 내전의 배경이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미국은 해외 파병 미군의 5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하겠다는 아시아 재균형전략을 추진하기 어려워졌다. 유럽과 중동에서 미군을 줄일 수도 없고, 예산부족으로 아시아에 미군을 증파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신뢰를 잃은 서구 자본주의


미국의 경제위기도 여전하다. 물론 최근 미국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는 있다. 몇몇 지표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올해 1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지난 3년 동안 가장 낮은 –1%라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등 여전히 불안한 요소가 남아있다. 또한 미국 주택가격과 주식가격에 이미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오는 형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경제 위기를 돌파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 경제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러시아와 중국은 무역대금 결제를 루블화와 위완화로 하는 비율을 높이고 있으며 나머지 브릭스 3개국도 자국 통화 결제를 시행하고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무역대금 결제에 상호 자국통화 사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와 북한도 무역대금 결제에서 달러를 쓰지 않는 방안을 합의했다. 이처럼 점차 달러 사용이 줄어들면 기축통화 지위를 통해 막대한 적자를 보전해 온 미국 경제는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미국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는 유럽이 겪고 있다. 6월 들어 유럽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 위험에 빠진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도입했다. 시중 은행이 유럽중앙은행(ECB)에 맡기는 하루짜리 초단기 예금 금리를 0%에서 –0.1%로 내린 것이다. 예금을 하지 말고 대출을 확대하라는 의미다. 유럽 경제위기에 대해 일각에서는 미국이 자국의 경제위기를 유럽에 떠넘긴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기간 지속되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 파산은 물론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도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추락하고 자본주의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국내 극우보수세력도 위기에 빠졌다. 한국의 극우보수세력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지지를 업고 성장했으며, 이른바 <산업화>의 치적을 앞세워 중간층을 포섭해 왔다. 그런데 두 축이 모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극우보수세력은 <승자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위기에 몰리면 극단적인 해법을 찾게 마련이다. 극우보수세력이 중간층을 고려하지 않고 극우화의 길을 걷는 데는 이런 배경이 존재한다.


한미일 3각군사동맹으로 활로를 찾는 미국


한국의 극우보수세력이 추구하는 극우화에는 독특한 지점이 있는데 바로 반북대결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지난 6월 17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차기 주한미대사로 내정된 마크 리퍼트 국방장관 비서실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리퍼트 내정자는 현 주한미대사의 임기가 끝나는 8월에 부임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언론들은 리퍼트 내정자가 41세의 젊은 나이라며 미국 외교에서 한국의 비중이 낮아진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리퍼트 내정자는 해군 특수부대 정보장교 출신이며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시절 외교안보정책 수석보좌관으로 기용해온 최측근이다. 1기 오바마 정부에서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비서실장과 대통령 외교안보 부보좌관을 역임했으며 2기 오바마 정부에서는 국방부 아태담당 차관보(대리)를 역임했고 현재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맡고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대사 내정자


리퍼트 내정자는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전략 입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한·미·일 3각군사동맹의 강력한 주창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4월 한미일 3국 안보토의(DTT)와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에도 미국 대표단으로 참석했다. DTT(Defense Tri-lateral Talks)는 정확히 번역하자면 한미일 3자 국방회담이며 한미일 3각군사동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또 4월 3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동맹 세미나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3국 국방장관 협의체도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국제적인 공감대 넓히기 ▲다자 및 양자 차원의 대북제재와 연합군사훈련을 통한 대북 압박 증대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 설치 등을 통한 강력한 억지력과 방위력이라는 대북정책 3원칙을 제시했다. 또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 등과 긴밀히 협의해 대북 억지를 강화하고 주한미군 2만8천500명이 필요할 경우 오늘 밤이라도 싸울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추게 만들 것”이라는 발언을 해 주한미군사령관 인사청문회에 참석했냐는 비난도 들었다.


오바마 정부가 마크 리퍼트를 주한미대사에 내정한 의도는 거의 분명해 보인다. 한미일 3각군사동맹을 강화해 북한을 고립, 붕괴시키자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당장 미사일방어(MD) 체제를 한국에 배치하자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구상을 세운 이유는 북한이 핵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미국 정보기관들이 엇갈린 분석을 내놓고 있는 내용이다. 미 국방정보국은 당장 핵미사일이 날아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대 주장을 하는 측도 최소한 가까운 몇 해 안에 핵미사일로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출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또 미국 경제위기로 인해 국방비를 감축해야 하는 조건에서 국방비 부족분을 한국과 일본에게 떠넘기자는 의도도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부추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기에 몰린 극우보수세력은 이런 미국의 요구에 더욱 철저히 복무하며 자신의 살 길을 찾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일제 강점을 찬양한 문창극을 총리로 지명하고, 주일대사 출신인 이병기를 국정원장에 내정한 것도 이런 흐름과 일치한다.


한미일 3각군사동맹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4월에는 한미일 3자 국방회담을 진행했으며, 5월 말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했고, 7월 1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한미일 합참의장 회담을 최초로 개최하는 등 이미 3국이 하나의 동맹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말기 추진하다 포기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대체하는 한미일 군사정보보호 양해각서도 발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한미일 3각군사동맹을 추진하자면 한국 국민들의 광범위한 반일감정을 억눌러야 한다. 한국 극우보수세력은 극우화를 통해 국민들의 반일행동을 억제하고 북한 붕괴를 목표로 한 대북총력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한국 사회 극우화와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결합하면, 그 결과물인 한미일 3각군사동맹은 동북아에 신냉전을 불러오고 나아가 한반도에 심각한 전쟁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계속)


출처: http://namoon.tistory.com/961 [동북아의 문]
(29) (-16)
 [5/6]   최인호  2017년9월10일 22시06분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8831

트럼프 대통령 만든 일등 공신, 극우 언론 ‘브라이트바트’
보수, 반(反)페미니스트, 인종주의 집단을 결집시키다
박상현 Mediati Content Lab 소장·Deepr 편집장 media@mediatoday.co.kr 2017년 09월 0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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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8831#csidx93f6ecb86771dd7beb5b4f4929f2fd8

2016년 11월, 정치 경력이 전혀 없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세력은 2015년 까지만 해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알트라이트(Alt-Right)’ 운동권이었다. 자신들을 ‘대안 우파(Alternative Right)’라고 하는 이들이 사실상 극우 보수에 가까운 주장을 하며 전통적 공화당 지지자들과 차별화하면서 이렇다 할 기반이 없는 트럼프를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올려놓은 것은 미국의 전통적인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알트라이트를 키운 공은 트럼프가 아니라 극우 인터넷 언론으로 유명한 브라이트바트(breitbart.com)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다시 말해, 브라이트바트가 없었다면 지금 백악관 주인은 다른 사람이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 미국 극우 매체 '브라이트바이트'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 미국 극우 매체 '브라이트바이트'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시작

미국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16년에 이미 슬레이트(Slate)와 고커(Gawker) 같은 인기 뉴스 사이트/블로그의 트래픽을 추월했던 브라이트 바트는 올해 1월에는 미국 전체 웹사이트 중 트래픽 45위로, 47위의 폭스뉴스, 50위의 허핑턴포스트, 53위의 워싱턴포스트, 그리고 64위의 버즈피드를 눌렀고, 트럼프가 취임한 지 한 달 후인 2월에는 무려 29위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브라이트바트가 대선 운동 기간 이전부터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며, 처음부터 친(親)트럼프, 알트라이트 계열의 독자를 타깃으로 하지도 않았다.

설립된 지 이제 갓 10년이 된 브라이트바트는 어떻게 폭스뉴스와 같은 전통적인 매체의 영향력을 잠재우고 (폭스뉴스는 선거운동이 진행되던 막판까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이를 위해서는 브라이트 바트 역사의 변곡점이 된 스티브 배넌의 등장을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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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트바트는 앤드루 브라이트바트(Andrew Breitbart)가 ‘브라이트바트 뉴스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설립했다. 그는 미국에서 기존 언론의 웹사이트를 벗어나 블로그 붐이 일던 2000년대 초에 블로그/뉴스 세계에 입문했다. 브라이트바트는 보수 논객이자 유명한 보수 뉴스 웹사이트 드러지리포트를 설립한 맷 드러지 밑에서 일하면서 보수 논객으로서의 이름을 키웠지만, 아리아나 허핑턴이 허핑턴포스트(현재는 허프포스트로 개명)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잠깐이나마 함께했을 만큼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와 가깝게 지냈고, 극우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초기 성장은 설립자 브라이트바트의 선동가적 기질과 뛰어난 탐사 취재의 산물이다. 지금은 작고한 뉴욕타임스의 미디어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카는 브라이트바트가 “주류 언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겨난 작은 픽셀들이 어떻게 하나의 담론을 형성하게 되는지 근본적인 작동 방식을 이해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브라이트바트가 일반 독자에게 알려진 계기는 2008년 대선 당시 에이콘(ACORN)이라는 진보적인 지역 공동체 조직에 대한 폭로 기사였다. 저소득층 지원 활동을 하던 이 단체에서 변장한 보수단체 회원에게 탈세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을 몰래 찍어 폭로해서 결국 그 단체가 문을 닫게 한 것이다. 그 뒤로도 오바마 행정부의 농무부 장관이 백인에 대한 인종주의 발언을 하는 듯한 동영상을 공개해서 보수층의 분노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2011년에는 민주당의 떠오르는 스타(이자, 힐러리 클린턴의 최측근 비서의 남편인) 앤서니 위너의 ‘섹스팅’ 스캔들을 폭로해서 위너 하원의원을 추락시켰다.

하지만 에이콘이나 농무부 장관에 대한 폭로 기사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수준의 비디오 편집을 하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 경향은 훗날 더욱 심각해져 브라이트바트 뉴스에 가짜 뉴스라는 오명을 안겨주었지만, 앤드루 브라이트바트가 사이트를 운영하던 시기까지만 해도 비판은 제한적이었다.

스티브 배넌과 극우 알트라이트

보수 진영의 새로운 뉴스 웹사이트 정도로 여겨지던 브라이트바트 뉴스가 탈바꿈하게 된 계기는 스티브 배넌이 전면에 나서면서부터다. 전직 해군장교이자 월스트리트의 골드만삭스에 근무한 은행가, 그리고 할리우드의 투자자이기도 했던 배넌은 자신의 투철한 보수적인 정치관을 전파할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창립 멤버였는데 2012년 설립자 앤드루 브라이트바트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대표가 됐다.

그가 브라이트바트를 극우 성향의 젊은 남성들이 찾는 사이트로 바꿀 수 있었던 배경은 자못 흥미롭다. 배넌은 골드만삭스에서 나온 직후 대만에서 한 게임업체를 운영했다. 그런데 그가 운영한 회사는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라 게임업계에서 흔히 ‘황금 채굴’이라고 하는 업종으로, 중국의 젊은 게이머들을 고용한 뒤 게임을 통해 아이템을 획득하게 하고 그것을 다른 게이머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골드만삭스가 투자할 정도로 유망했던 사업이지만, 게임에 유리한 아이템을 정당한 실력이 아닌 돈으로 사고 판다는 사실이 게이머들 사이에 알려지고 집단적인 항의에 게임 회사들이 굴복하면서 배넌의 사업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전에는 목격하지 못했던 집단의 영향력을 발견했다. 즉 저소득층의 젊은 백인 남성들의 힘을 목격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반(反)페미니스트적이며 인종주의적인 성격을 보이는 그 집단은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만 신경 쓰는 공화당의 기축 세력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거에서 그 힘이 결집되어 나타난 적은 없었다. 배넌이 이들의 힘을 재확인한 것은 그가 브라이트바트를 이끌던 당시 마일로 이아노풀로스라는 테크 에디터를 고용하면서다.

이아노풀로스는 2014년 게임 산업 내의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둘러싼 게이머게이트(Gamergate) 논쟁이 일었을 때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로 포챈(4chan)이나 레딧(reddit) 같은 남성 중심의 포럼에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분노한 남성 게이머들의 트래픽을 브라이트바트 사이트로 끌어오는 역할을 했다.

2015년까지 이어진 게이머게이트 논쟁은 자연스럽게 젊은 백인 남성의 정치적인 담론으로 이어지면서 극우 성향의 알트라이트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스티브 배넌이 트럼프를 당선시킨 알트라이트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배경이다.

브라이트바트가 새로운 오디언스를 찾아 빠르게 성장했지만, 극우적인 방향 전환에 모든 에디터가 찬성한 것은 아니다. 특히 스티브 배넌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브라이트바트 뉴스를 사실상 친트럼프 매체로 끌고 가면서 내부에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다. 선거운동 초기에 트럼프의 선거운동본부장이 브라이트바트 기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배넌은 기자의 편을 들지 않고 오히려 트럼프 선거운동본부장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고, 이에 반발해 벤 샤피로를 비롯한 초창기 기자들이 브라이트바트를 떠나기도 했다.

브라이트바트 뉴스를 동원해서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며 사실상 트럼프의 외곽 조직으로 만든 배넌은 결국 미국 대선이 클린턴 대 트럼프로 좁혀지면서 트럼프의 선거운동본부장으로 발탁되어 아예 정치권에 들어갔다(현재는 백악관에서 트럼프의 수석고문직을 맡고 있다). 이 모든 일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았고, 브라이트바트의 성공으로 이어진 셈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해줄 주류 언론사를 찾지 못한 알트라이트 세력에게 브라이트바트는 좋은 보금자리를 제공한 것이다.

특히 지난 10년 이상 미국 보수 언론의 대표로 여겨져온 폭스뉴스와의 정면 대결은 브라이트바트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2016년 공화당 경선 토론회를 주최한 폭스뉴스의 여성 진행자 메간 켈리에 대해 트럼프가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하자 폭스뉴스가 비판했는데, 트럼프 지지자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서 폭스뉴스를 공격한 것이다. 물론 그 선두에는 브라이트바트 뉴스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꿋꿋하게 버티던 폭스뉴스도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친트럼프로 돌아섰고, 이는 트럼프 지지자들, 혹은 알트라이트 세력에게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이 굴복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 미국 극우 매체 '브라이트바이트'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 미국 극우 매체 '브라이트바이트'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트럼프 당선과 그 이후

브라이트바트의 영향력은 미국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2013년 런던에 사무실을 연 브라이트바트는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또 프랑스와 독일 진출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끊임없이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지지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브라이트바트의 인기와 영향력은 계속될까? 올해 초에 치솟았던 브라이트바트의 트래픽은 급격히 줄어들어서 지난 5월에는 281위로 떨어졌다. 지난 2월의 29위에 비하면 충격적인 하락이다(반면 워싱턴포스트 등의 진보적인 성향의 매체들은 상승세에 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트럼프의 인기 하락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배니티페어의 티나 은구옌은 브라이트바트의 인기 하락을 주류 정치권과 언론을 공격하는 것으로 성장해온 매체의 한계로 본다. 브라이트바트는 선제공격을 무기로 인기를 끌어온 매체인데, 트럼프가 집권한 이후로 그 역할은 반트럼프 진영에 속한 매체로 넘어갔다. 이제 브라이트바트는 트럼프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마다 옹호하는 논리를 펴야 하는 수세적인 자세로 바뀌었는데, 독자들은 그런 매체에 흥미를 쉽게 잃는다는 것이다.

물론 스티브 배넌의 브라이트바트가 끝까지 친트럼프로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는 백악관에서 언제 배넌이 내팽개쳐 질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배넌이 트럼프를 공격할지 그리고 만약 그랬을 경우 알트라이트는 브라이트바트 편에 설지, 트럼프 편에 남을지 역시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브라이트바트의 미래는 그래서 오리무중이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하는 <신문과방송> 2017년 8월호에 실렸습니다. 언론재단의 양해를 구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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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빙하는 움직인다》(송민순, 창비)
무기력과 모순으로 점철된 민주당 집권기 북핵 외교사

201호 2017-03-21

| 주제:

대외정책

지난해 10월 출판된 전 외교부장관 송민순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는 민주당 집권 시절의 북한 핵을 둘러싼 외교사를 다룬 책이다. 송민순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여러 요직을 맡은 최고위 외교 관료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냈고 1999년 제네바 4자회담에 한국 측 대표로 참가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2005년 6자회담 수석대표에 이어 2006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으로 발탁됐다. 그 뒤 2008년까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주당 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최순실 사건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던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이 책이 출판되자 그 내용의 일부를 근거로 반격을 시도했다. 송민순은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고 기권 결정을 내렸다’고 썼다.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지 한 달 뒤의 일이다. 송민순은 2006년 북한 인권결의안에 찬성했으니 2007년에도 찬성하자고 했지만 통일부장관 이재정(현 경기교육감), 국정원장 김만복, 안보실장 백종천은 정세를 고려해 기권하자고 했다고 한다. 논란 끝에 일부 인사들이 북한 측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자고 했는데 송민순의 기억으로는 그 중에 당시 비서실장 문재인도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색깔론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덮으려던 시도는 10월 말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대중운동이 분출하면서 더는 논란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위선적인 대북 압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송민순의 친미 행보와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의 형식주의적 반론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중동에서 수십만 명을 학살하고,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체계적인 학대와 고문을 일삼고, 본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재판도 없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가둬 고문하는 미국이 추진한 ‘인권’ 결의안이라니!

새누리당의 공세로 이 문제가 가장 주목받긴 했지만 5백 쪽이 넘는 회고록에는 이보다 더 중요한 얘기들이 많다. 특히 민주당 정부 시절 대북·대미 외교의 최전방에서 활동한 외교부 출신 관료의 기억은 (혹시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차기 정부의 외교 정책을 내다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미국은 왜?

이 회고록만 봐도 송민순은 여러 면에서 친미·우파적인 인물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지렛대는 … 한미동맹이 쥐고 있다”는 소신이 확고하다. 군사적 충돌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한⋅미 공동으로 군사력을 포함한 물리적 행동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가 새누리당이 아니라 민주당 쪽으로 기운 데에는 외교부 관료의 실용주의적 태도가 작용한 듯하다. 그는 북한을 “비정상적인 행위자”로, 미국은 이를 단속해야 할 세계의 경찰로 규정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1980년대 동유럽 국가들처럼 외부와의 교류를 유도함으로써 서서히 무너뜨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긴다. ‘햇볕정책’을 내세운 김대중이나 이를 계승한 노무현의 정부에서 그가 발탁된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정작 북한 정권 자신은 김일성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제한적이지만) 외부 세계와의 교역을 원해 왔다는 사실이다. 소련과 동유럽 붕괴 이후에는 물론이고 1980년대에도 북한은 당시 동유럽 나라들처럼 서방과 교역을 확대하려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이 붕괴하자마자 미국이 핵 개발을 빌미로 봉쇄 정책을 추진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사실 북한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문은 밖에서 걸어 잠긴 형국이다.

송민순은 당시 6자회담 협상에서 이런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당시 미국 측 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은 “본국으로부터 북한에 대해 평화적 핵 이용 권리라는 개념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북한 측의 핵심 요구가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이 약속한 경수로 건설을 완료하라는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시간만 끌겠다는 태도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은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핵무기 개발은 유보하거나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 등의 경수로 제공은 전력 생산을 위해서라도 시급한 요구였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가늠할 만한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했다.

송민순은 북한이 2006년 첫 핵실험을 한 뒤에도 한동안은 핵 포기를 배제하지는 않았던 듯하다고 전한다. “[2007년] 당시 김계관은, 핵 프로그램은 전적으로 방어용이지만 ‘지나치게 돈이 많이 든다’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 위장용 발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 북한이 최소한 그때까지는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염두에 두고 진지하게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협상하고 있다는 징후로 보였다.”

반면 미국의 태도는 일관성이 없었다. 경수로의 ‘경’자도 꺼내지 말라던 미국 협상단은 6자회담이 아무 성과없이 끝날 듯한 상황이 되자 갑작스레 태도를 바꿨고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송민순은 이때까지도 미국이 “중국 측의 ‘경수로 제공’ 표현에 대해 왜 즉각 거부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송민순이 세부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 백악관 참모들은 사실상 9·19 공동성명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협정문 따위는 개나 줘 버리라는 식의 태도였다. 미국은 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북한이 계좌를 갖고 있는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불법자금을 거래하는 의혹이 있는 은행’으로 지정해 돈줄을 막았다. 미국은 이 제재가 미국 국내법에 따른 것이므로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는데 그로부터 2년 뒤에는 “법적 장애도 넘어서겠다”며 돈을 돌려줬다. 이후 공동성명의 세부 이행 방안을 담은 2·13 합의가 도출됐다. 당시 북한이 미국 대표단이 보는 가운데 영변 핵발전소의 냉각탑을 무너뜨리던 장면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8년 미국이 북한의 플루토늄 활동 전모를 파악하겠다며 ‘모든 시설에 대한 강제사찰’을 요구해 모든 협상이 마비됐다. 송민순이 보기에 “북한이 만약 그런 검증 방식을 수락할 수 있었다면 북한 핵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송민순도 미국의 진정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듯하다.

“그 후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거나 사용할 징후가 임박하지 않는 한 무력 대응까지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협상의 바닥까지 가보자는 의지도 없었다. 그냥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것으로 비칠 때가 많았다. 미국이 의도하는 바는 아닐지라도 그렇게 되면 한국은 종국적으로 핵무장을 한 북한의 위협하에 살아야 되고 그래서 한국은 미국의 안보에 더욱 의존하고 또 한⋅미⋅일 삼각안보체제의 틀에 묶일 수밖에 없다. 한⋅미⋅일 동맹 강화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최우선 목표이다.”(189쪽)

“부시는 기본적으로 북한 핵이나 북한 문제보다는 한⋅미 동맹을 잘 관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익, 즉 한⋅미⋅일 삼각협력 구도로 중국과 러시아에 대응하면서 서태평양을 미국의 영향하에 두려는 것이었다.”(218쪽)

사실 미국이 6자회담에 나서게 된 동기 자체가 북핵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동 전쟁에서 늪에 빠진 미국으로서는 협상에 나서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북한의 핵 개발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군사력을 행사할 중요한 명분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그냥 내버려 뒀다가는 일본과 한국을 미국의 동맹으로 묶어 두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 핵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일본과 한국이 왜 핵 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의 핵 우산에 의존하겠는가. 이 때문에 부시 정부는 그토록 거부하던 북미 대화에도 응했다. 결과적으로는 클린턴과 같은 길을 간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됐다는 점이다.
한·미·일 동맹

철저히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지만 송민순은 오늘날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비교적 냉정하게 꿰뚫어 보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상황이 “미국이 의도하는 바는 아닐” 것이라며 현실에서 눈을 돌려 버린다. 기껏해야 미국 내 강경파가 득세한 결과로 보거나 군수산업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의 입김이 크기 때문이라는 식의 주장으로 나아간다.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을 움직이는 풍향은 군수산업과 군부를 중심으로 한 군산복합체의 이익과 제조⋅금융⋅서비스 그룹의 이익 사이를 오고 간다.”(496쪽)

그러나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공통적으로 집권 기간 내내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2~3년마다 미국 군수산업계의 영향력이 등락한다는 근거도 없다. 이런 조야하고 기계적인 설명은 경제적 요인을 분석에 끌어들여 짐짓 유물론적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원인에서 눈을 돌리는 쉬운 방편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런 얼버무리기는 현실에서 외교라는 위태로운 줄타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무력 충돌이 아니라면 미국 내 ‘온건파’나 비군사부문의 편을 드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책 아니겠는가. 또, 외교를 통한 해결책은 기존의 국제 질서를 인정하는 한에서만 작동하므로 결국 미국에 의존하는 전통적 대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송민순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국과 미국으로서는 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 협상이라는 지렛대를 먼저 써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압도적 물리력을 포함하는 다른 방도를 강구할 수 있다. 이런 지렛대를 위해 한·미 동맹을 작동시켜야 한다.”(529쪽)

송민순은 책의 서문에서 “북한 핵과 이를 둘러싼 외교전의 실상을 면밀히 확인해야 할 때다. 지나온 현장에 밀착해 봐야 앞으로 갈 길도 찾을 수 있다”며 경험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접근법을 강조한다.

그러나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책갈피)에서 부시 정부의 고위 참모였던 칼 로브의 입을 빌어 이런 ‘현실론’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한다.

“[당신들 같은] ‘현실주의’ 집단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열심히 탐구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현실을 당신들이 열심히 연구하는 동안 우리는 또 행동해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낼 것이고, 당신들은 그 새로운 현실들을 또 연구하게 될 것이다. 역사의 행위자는 우리고 … 당신들은 모두 그저 우리가 하는 일을 연구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엄청나게 오만한 발언이지만 미국의 진정한 의도와 목적 자체에 도전하지 않는 ‘현실적’ 대안이 실제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 주는 얘기다.
제국주의

아버지 부시에서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의 북한 압박 정책은 중국이라는 강대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조차 미국의 대 중동 정책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부상하는 중국뿐 아니라 대서양 건너편의 전통적 유럽 강대국들도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동 석유에 대한 통제권 확립은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부시 부자가 각각 치른 두 차례의 이라크 전쟁 사이에도 미국의 세계적 지위와 능력은 더욱 약화됐다. 미국은 여전히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경제적 지위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지만 경제적 영향력은 줄어드는 현실이 미국으로 하여금 갈수록 군사적 수단을 패권 유지의 유력한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이끄는 핵심 동인이다.

오바마는 미국이 중동의 늪에서 빠져나와 아시아로 눈을 돌리도록 하는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을 폈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더한층 확대한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다만 이라크와 달리 북한은 미국이 당장 군사력을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위험 부담이 크다. 영변 핵시설은 중국 국경과 불과 1백 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채택된 정책이 ‘전략적 인내’다. 당장 공격하지도 않지만 협상도 안 한다는 이 정책은 겉보기로는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 8년 동안 네 차례나 핵 실험을 했고 ‘인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그때마다 대북 제재는 강화돼 왔다.

그러나 그 사이 미국은 북한을 빌미로 “가장 중요한 동맹”인 일본이 재무장하도록 고무하고,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서해상의 충돌 등을 빌미로 서해까지 작전 반경을 확대했다. 역사적 갈등 관계인 한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군사협정을 체결하도록 해 한·미·일 동맹을 강화했다. 이제는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고 MD에 편입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전진시키는 데에서 적잖은 성과를 거둔 셈이다.

최근 미국 국무장관 틸러슨은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했는데 이는 16년 전에 아들 부시가 ‘클린턴처럼 하지는 않겠다’(Anything But Clinton, ABC)고 한 것을 연상시킨다. 트럼프가 전임 정부가 간 길을 고스란히 따라갈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트럼프는 부시보다 미치광이 기질이 훨씬 강하고 미국은 중동에서 잠시 빠져나와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더욱 발전시켰고,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자신의 군사력을 확장 배치하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위험해지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갈등 속에서 외교적 수단으로 평화를 지키고 통일로 나아가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지는 분명하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만이 이들의 무모한 시도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은 미국 제국주의가 낳은 괴물

“부시 행정부는 핵 태세 보고서에 따라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핵 포기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미국 스스로는 더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면서 실제로 핵실험을 재개했다. 그러나 실제로 핵무기 개발을 시도 중인 이란이나 북한이 아니라 핵 개발 확증이 없는 이라크에 무력을 사용했다. 2002년 10월 미국 ‘국가정보 보고서’는 이라크가 실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 중인 것이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욕구’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음에도 5개월 후인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 다음 달부터 북한은 핵 억지력이라는 말을 들고나오기 시작했다.”(77쪽)

“후에 알려진 미국 정부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과 파키스탄은 1997년경부터 북한의 미사일 능력과 파키스탄의 핵 능력을 서로 교환 거래했고 2001년경부터 북한이 농축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부시 행정부는 2001년 9월 핵을 확산한 파키스탄에 대한 핵 확산 관련 제재를 해제했다. 당시 아프간에서의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파키스탄의 협조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9년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군이 수렁에 빠지도록 유도하기 위해 파키스탄과 군사정보 협력을 강화했다. 이때 파키스탄의 핵 개발도 진행됐다.”(460쪽)

“북한 측이 중국 고위인사들에게 언급한 내용 등을 종합하면, 북한은 1999년 NATO 공군이 세르비아 폭격을 개시하고 이어 2001년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국제전범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보고 핵무기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이 강해졌다. 이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카다피가 비슷한 운명에 처하자 핵 보유를 정권 보장의 뗄 수 없는 장치로 간주하게 되었다고 한다.”(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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