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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음악가 정율성의 삶과 예술가의 윤리 - ①
정율성의 음악들은 항일과 조국해방이라는 역사의식의 발현과 실천
김갑수 | 2016-02-26 12:46: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겨울을 나면서 내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정율성 관련 논문을 썼다. 나는 약간의 의견을 개진했고 최종 퇴고를 도왔다. 그런데 서양음악 학술지에서 게재를 거부한 반면 가장 전통 있는 국악 학술지에서 흔쾌히 수용하여 게재했다. 논문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은, “너무도 재미있는 역사에 남을 논문”이라고 말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몇 회로 나누어 올린다.

음악가 정율성의 삶과 예술가의 윤리

목차

Ⅰ. 머리말
Ⅱ. 성장·출정과 선비윤리
Ⅲ. 의열단·조선혁명간부학교와 사회주의
Ⅳ. 민족윤리와 이념윤리의 조화, <5월의 노래>
Ⅴ. 연안, 인민혁명과 조국의 독립
Ⅵ.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불화, 정풍운동
Ⅶ. 맺음말


Ⅰ. 머리말

시는 자연의 모방이라는 해묵은 명제는 여전히 상당 부분 정당하다. 이것은 예술을 연구하는 데에 예술작품 이외의 요소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역사주의적 방법론을 두둔한다. 여기서 예술작품 이외의 요소란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투여되는 요소들을 가리킨다.

논의가 분분하기는 하지만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투여되는 요소는 대체로 세 가지, 즉 작가와 수용자와 사회라는 것에는 어느 정도 의견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세 번째 것인 사회는 자고이래의 만능어 자연에 포함되는 것이며, 이를 보다 선명한 용어로 대체한다면 시대 또는 정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반일항쟁과 중국 사회주의 인민혁명에 복무한 음악가 정율성을 논의하는 데에는 당대 사회를 필수적으로 연결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시대 또는 정치로도 대체가 가능한 용어 사회를 우리에게 낯익은 용어인 역사로 바꾸어 쓴다면 의미가 더욱 명징해진다.

역사에는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시간으로서의 역사가 있다. 전자는 과거, 후자는 현재를 중시하여 문제 삼는다. 기록의 역사는 사실(史實)을 인식하는 것이다. 반면에 시간의 역사는 의미를 평가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를 가리켜 역사의식이라고 말한다. 즉 시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의식이 곧 역사의식이다.

역사의식은 개인윤리를 공동체의 사회윤리와 근접시키려고 노력할 때 발현되는 정신이다. 그런데 우리는 전통적으로 예술가와 사회의 관계를 고찰하거나 예술가의 역사의식을 논의할 때에는 사회나 역사의식이라는 용어를‘윤리’라는 보다 포괄적인 용어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 글의 제목에 ‘예술가의 윤리’라는 용어가 자리 잡은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우리는 정율성과 같은 유형의 삶을 예술과 관련시켜 논의하는 데에 아직 서툴다. 정율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유형의 예술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식민지시대 조선반도의 남도 땅에서 성장하다가 10대 소년의 나이에 불현듯 부모와 이별하며 고향을 버리고 격동의 중국대륙에 들어간 예술가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당시 소년에게 중국대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그가 가입하여 활약한 항일무장단체 의열단과 조선의용군이란 것은 도대체 그의 예술과 또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더욱이 중국 사회주의 인민혁명의 요새였던 연안 행을 자원했을 뿐 아니라 치열한 대일 전선이었던 태항산을 오가며 생사를 건 모험을 감행한 예술가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논의해야 하는지 등에 합의해 놓은 바가 거의 없다.

이것은 정율성이 단순한 독립운동가거나 혁명가라면 하등 제기될 수조차 없는 문제다. 문제는 그가 예술가라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예술가는 간고한 대 제국주의 항쟁의 도정에서도 예술 창작의 열정을 식혀본 적이 없다. 그가 달성한 예술작품의 성과는 이미 세속적으로 돌출했으며 그의 음악이 가진 영향력은 한국 어떤 음악가의 것보다 광범위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태 정율성에 관한 논의를 거의 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소임을 방치한 태만이었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정율성과 같은 예술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정율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요긴한 논리를 피력한 예술가는 톨스토이가 아닐까 한다. 예술은 종교와 도덕의 목적을 추구하며 그 이상과 일치되어야 한다고 여긴 톨스토이는, 예술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예술적인 특별한 기호에 의하며 민중 전체에게 도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율성의 예술작품들은 태반이 이 예술론에 부합된다. 이렇게 볼 때 정율성의 음악들은 의외로 단순한 목적에 의해 창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은 항일과 조국해방이라는 역사의식의 발현과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율성의 삶과 예술을 역사의식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이런 시도는 의외로 편협하거나 편의적인 정치적 발상에 기인하는 수가 많다. 비윤리적인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면서 도탄에 빠져 있는 공동체 인민의 해방사업에 헌신하는 것은 정치 역사적 선택 이전에 인류의 보편적인 윤리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율성에 관한 한국의 선행 연구는 대부분 그에게 항일투사라는 역사적 의미만을 부여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선행 연구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술가라는 것은 의외로 다양하고 복잡한 의식구조를 가진 존재이다. 또한 정치 사회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과 심미적인 것 등은 인간성의 문제에 있어서 별개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본래부터 윤리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심미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고 그의 기본 충동은 미덕(美德)이 아니라 유희’라는 토마스 만의 관점은 앞에 언급된 토스토이의 예술론을 거의 부정한다.

이 글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두 가지 관점의 상충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과연 정율성은 항일전사인지 예술가인지, 혁명투사인지 음악가인지, 아울러 그의 삶은 정치 사회적이었는지 아니면 보편 윤리적이었는지를 논의할 것이다. 나아가 이 글은 정율성의 삶이 이 두 가지 중에서 꼭 하나만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두 가지를 포괄해서 규정해야 하는 것인지를 논증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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